박태선의 역사 - 초창기 집회 이야기(서울 남산부터 가덕도 집회)
1955년 시작된 박태선 장로의 전국 순회 부흥집회는 전국 대도시에서 연인원 5백만명 이상이 참석한 대규모 집회였습니다. 당시 한 번에 4~5만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시설이 없었기에 천막에서 집회를 진행하여 천막집회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서울 남산 집회
- 기간 : 1955. 3. 26.~4. 5.
- 장소 : 서울 남산 광장
- 규모 : 200여 평 대 천막 중심, 소 천막 10여 개 연결 가설
- 인원 : 하루 평균 6만 명, 연 60만 명 이상
- 특징 :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첫 번째 천막집회
기독공보 등 언론에서 주목한 집회
당시 1955년 4월 11일 발행된 기독공보의 기사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실려있다.
"박태선 장로의 능력으로 앉은뱅이가 걸으며 벙어리가 말하게 되는 기적이 있었다. 연 60만 명 집회 … 수십 개의 천막 아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의 수가 수만을 세는 성황을 이루었다."
서울 영등포 집회
- 기간 : 1955. 4. 27.~5. 6.
- 장소 : 여의도 비행장 뒤 백사장
- 규모 : 조립식 천막으로 500여 평 가건물
영등포 집회 당시 불의사자 박태선 장로 심령대부흥회라는 광고로 동아일보 1955년 4월 27일에 게재되었습니다.
안동 집회
- 기간 : 1955. 5.12~5.19.
- 장소 : 안동역 부근 낙동강 변 백사장
당시 안동 집회 초기에는 구경만 할 뿐 예배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60세 벙어리 노인이 예배 도중 말문이 트이자 기사이적이 일어남에 감격하여 집회가 뜨거운 열기로 가득찼다.
부산 공설운동장 집회
- 기간 : 1955. 5. 23~5. 31.
- 장소 : 부산 공설운동장(現 구덕운동장)
- 규모 : 1,000여 평 가설 천막
서울 장안을 휩쓸고 높은 명성이 전국적으로 전해진 후 박태선 장로는 누구나 "기적을 보여주는 사람" 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대구 집회
- 기간 : 1955. 6. 9.~6. 16.
- 장소 : 칠성동 천변 백사장
- 규모 : 1,000여 평의 천막
- 특징 : 대구 집회 설교 말씀을 정리해 하나님의 첫번째 설교집이 출간되었다.
첫 설교집이 출간된 집회이다. 일주일간 대구에서 박태선 장로가 인도한 부흥회에서 부산진 장로교회 김성여 목사는 박태선 장로가 말한 것을 모두 필기하였고 원고지에 옮기려니 1,500매 가량이 되고 책으로 만들면 50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 나왔습니다.
서울 용산군인교회 집회
- 기간 : 1955. 6. 23.~6. 30.
- 장소 : 서울 용산 육군 본부 내 광장
- 특징 : 윤치영 장관 등 인사들의 체험 증언
유명 인사가 방문하여 박태선 장로의 안수를 받고 건강을 되찾은 일화를 전합니다.
서울 한강 모래사장 집회
- 기간 : 1955. 7. 4.~7. 11.
- 장소 : 한강 모래사장(現 용산구 동부 이촌동)
- 규모 : 1,500평 천막
- 인원 : 연 60만 인파 운집
한강 집회에서는 은혜를 증언하는 미국 병사도 있었으며 연 60만 인파가 운집한 집회입니다.
인천 집회
- 기간 : 1955. 9. 16.~9. 22.
- 장소 : 인천 동산중학교 운동장
폭우가 내렸던 인천집회는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대성황을 이루어 철야를 희망하며 계속해서 은혜를 갈망하였습니다.
대구 집회
박태선 장로는 기성 교회에서도 초청받아 집회를 진행했습니다.
- 기간 : 1955. 9. 30.~10. 6.
- 장소 : 칠성동 천변 백사장
기성 교회인 침산제일교회에서 박태선 장로의 명성을 듣고 초청하여 대구에서 대집회를 주최하게 되었다.
이때 대성황을 이루었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기사이적이 발생하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부산 초량집회
반대에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집회였습니다.
- 기간 : 1955. 10. 16.~10. 22.
- 장소 : 초량역 앞
기정 종교의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인파가 모였고 반대 세력의 방해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부산 광복교회에서 장티푸스로 생존이 힘들다는 진단을 받은 청년이 박태선 장로의 기도로 완치가 되기도 했다.
서울 제2운동장 집회
서울 제2운동장 집회는 연인원 100만이 모였던 대집회입니다
- 기간 : 1955. 10. 26.~11. 1.
- 장소 : 서울 제2운동장
- 규모 : 연인원 100만 인파 운집
- 인원 : 남산, 영등포, 한강 집회를 능가하는 대집회
위장병을 오래 앓아 죽을 조금씩 밖에 못 먹었던 제가 박태선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난 후부터 밥 한 공기는 문제없이 먹게 되었습니다. 라는 무임소장관의 실제 인터뷰도 있었다.
원주 집회
- 기간 : 1955. 11. 8.~11. 14.
- 장소 : 원주역 주변 학성동 공터
6.25 전쟁 후 제1군 사령부와 직할부대 및 전투근무 지원부대가 원주로 옮겨왔다.
군인 가족과 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인하여 원주는 인구 증가와 함께 큰 군사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광주공원 집회
- 기간 : 1955. 11. 25.~12. 1.
- 장소 : 서동 광주공원 광장
집회장에는 철야 기도하는 수가 1만 명을 넘어 2만 명을 헤아리고 있다.
순천 집회
- 기간 : 1955. 12. 8.~12. 13.
- 장소 : 순천 철도국 운동장
순천 신도들의 열성적인 주선으로 순천 철도국 그라운드에서 집회가 열렸다. 순천과 인접도시에서 모여온 사람들로 집회장은 넘쳐 났다.
목포 집회
- 기간 : 1955. 12. 17.~12. 23.
- 장소 : 기마 공설운동장(現 중앙초등학교 일대)
목포 집회는 매 시간 3만여 명씩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수만 군중은 추운 날씨와 폭우에도 불구하고 손뼉을 치며 찬송과 기도를 올리며 철야를 했다.
마산 집회
- 기간 : 1956. 3. 5.~3. 12.
- 장소 : 서성동 광장
박태선 장로의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마산 교회가 합동하여 극장에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하고, 유명한 목사들을 초빙해 부흥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박 장로의 집회를 도와주는 격이 되었으니, 집에 가만히 있을 사람도 극장 가려다가 길목에 개설된 집회 장소에 들어오게 돼 날이 갈수록 성황을 이루게 된 것이다.
전주 집회
- 기간 : 1956. 3. 19~3. 24.
- 장소 : 전매청 광장
- 인원 : 연 30만 명 참가
이 집회에서는 무려 1천 6백여 명의 온갖 병을 가진 환자, 불구자들이 서고 움직이고 말하고 듣고 완치되었다.
여수 집회
- 기간 : 1956. 4. 2.~4. 7.
- 장소 : 여수 서(西)초등학교
일본에서 온 한국 여성인 결핵 환자가 임종 직전에 박태선 장로의 기도로 소생하여 활보하게 되자 이 소문이 좁은 여수시에 퍼져 더욱 몰려들게 되었다.
군산집회
- 기간 : 1956. 4. 16.~4. 21.
- 장소 : 개복동 야산(現 군산영광여고 일대)
첫날 밤에는 약 만 명 가량 모여 왔던 집회가 다음 날 밤에는 2만을 넘어 날로 늘어나서 끝날 때는 입추의 여지없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대전집회
- 기간 : 1956. 4. 23.~4. 28.
- 장소 : 대전 철도 운동장
서울 제2운동장 집회
- 기간 : 1956. 5. 16.~5.25
- 장소 : 서울 제2운동장
- 규모 : 첫날 2만 명 참석, 둘째날부터 1일 15만 명 참석
부산 가덕도 집회
- 기간 : 1956. 8. 16.~8. 18.
- 장소 : 現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인구는 얼마 되지 않으나 가덕도 주민들은 은혜를 갈망하는 나머지 물밀 듯 집회에 모여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했다. 이곳은 지역이 외진 만큼 다른 도시에 비해 은혜를 받는 데 뒤늦은 감이 있어 은혜를 받고자 하는 열망은 다른 어느 집회에서보다도 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