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선 전도관, 난동과 폭력 사태의 전주 종교 집회

2021. 3. 26. 08:41과거이슈

폭력은 물질적 혹은 심리적 수단을 써서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일을 말합니다. 이번 사연은 기독교와 박태선 전도관 사이에 있는 무서운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해요!

 

이야기는 1956년 전라북도 전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천부교와 기성 교단의 대립

그때 당시 모든 교회의 교파들은 '불의 사자'라고 불리던 박태선을 집중공격 하고 있을 때 였어요. 당시 박태선 장로는 전국을 순회하며 집회를 인도하고 있었는데 너무 큰 인기를 얻자 이단이라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전주로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이번 기회에는 기어코 박태선 장로의 방해하려 했어요. 추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이 되는 고성모 목사와 김지세 목사를 필두로 부흥운동을 꺽기 위해 비난, 야유, 삐라 살포, 토론을 위한 질문 등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방법이 아닌 더 무서운 계획을 세웠답니다.

당시 천부교 집회를 상상한 이미지

결국 당시 전주에 있는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등 약 500명의 사람이 집회 현장을 습격(!)했어요

기성교단의 폭력, 난동 시위

소름돋는 것은 이런 폭력적인 난동에 참여한 전주의 모든 교파의 목사와 장로, 권사, 학생 등 당시 500여명의 사람들이 당시 동부교회에서 단합예배를 봤다는 것이고, 집회 장소로 돌격할 땐, 찬송가 371장 3절 이 땅에 마귀 꽉 차서 성도를 삼키려 하나...를 부를 것을 지휘부에서 지시했어요.

 

이에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던 예배장에 도착한 폭력 집단은 강단을 향해 일제히 뛰어들었어요.

 

난동꾼들은 돌격했고 박태선 장로를 지키기 위한 신도들이 둘러싸는 대치 상황으로 집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습니다. 무섭게 돌변한 그들은 남자들을 폭행했고 여자들은 단상에서 끌어내리려 했어요. 밑에서는 돌까지 집어 던졌지만 무너지지 않았어요. 꽤 오래 상황이 지속되었고 기성교인들이 노래하려던 찬송가 371장 3절은 단상 위에서 울려퍼졌어요.

 

수십 명의 경찰이 출동했고, 결국 난동은 진정됐어요.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난동자들은 천막 밖에서 매일같이 돌을 던지고 야유를 퍼부었어요.

 

그들은 박태선을 비방하는 성명서까지 발표했는데, 목사들의 비난이 도를 넘어서자. 오히려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어요.

이끌어 내야 할 사람들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기에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죄책감을 느꼈던 당시 전북기독학생연합회 부회장 정영곤씨는 그 후에도 기성 교회의 목사들이 지나치게 박태선을 비난하자. 오히려 그 이유가 궁금해졌어요. 그래서 정영곤씨는 천부교 군산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1957년 1월 28일 군산전도관 개관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에 감화를 받고 안찰도 받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의 설교말씀 마디마디에는 이상한 힘이 있었고 새로움이 있었으며 나의 마음을 찌르고 나의 심장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박 장로님은 성경을 떠나서 설교한다고 들었는데, 듣는 말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끝까지 앉아 들었으나 더 듣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도관에 나오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들을 때마다 설교의 말씀은 나를 감화시키고 마침내 나는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앙신보 1957.9.23>

 

결국 폭력 난동에 앞장섰던 난동꾼에서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고 전도관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박태선과 관련된 전주 집회에 대한 일화를 알아봤어요.